국내 혈액 비축분이 혈액수급위기단계 '관심' 상황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혈액형을 합쳐 쓸 수 있는 혈액 보유량이 약 3일분가량만 남았다는 뜻이다. 통상 혈액은 일평균 5일분 이상을 비축해야 안정적인 의료 활동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수년간 혈액 보유량이 줄어 왔으며, 특히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헌혈 부적격자가 대거 늘어나면서 이같은 '혈액 품귀' 현상으로 이어졌다. 헌혈 단체는 혈액 수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혈액 보유량, 단 '3일분' 남았다
대한적십자사 산하 혈액관리본부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매일 자정 기준 혈액보유현황을 공개한다. 가장 최신인 12일 혈액보유현황을 보면, 적혈구제제 보유량은 모든 혈액형을 합쳐 평균 3.4일분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여유분이 높은 B형 혈액은 3.9일분, 가장 적은 O형은 3.0일분 남은 상태다.
혈액관리본부는 일평균 5일분의 혈액이 비축된 상태를 '적정혈액보유량'으로 보고 있다. 만일 혈액이 적정혈액보유량보다 적으면, 의료기관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 혈액관리본부는 혈액 보유량이 5일분보다 적을 경우엔 '관심' 등급이며, 3일분 미만이면 '주의', 2일분 미만일 때는 '경계', 1일분 미만인 경우는 '심각'으로 분류해 대처하고 있다.
현재 혈액 보유량은 위기 징후 가장 초기 단계인 관심 등급에 있지만,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는 혈액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혈액관리본부가 게재한 정보는 전국 평균에 불과하며, 각 지방마다 편차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수요가 높은 혈액형의 혈액은 다른 혈액보다 더 빨리 떨어질 수 있다.
일례로 지난 8일 0시 기준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에 따르면, 당시 광주·전남 지역 혈액 보유량은 2.2일분에 불과해 '주의' 단계였다. 혈액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환자의 생명이 위독해지는 위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유행, 헌혈자 수 감소가 '혈액 품귀' 현상 불러
국내에서 '혈액 품귀' 현상이 벌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던 지난 2020년 당시, 헌혈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혈액 수급에 차질을 빚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헌혈의 집도 헌혈자를 모집하기 더욱 힘들어졌고, 결국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복지부)가 국가헌혈추진협의회를 개최해, 각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협력해 헌혈 집중 홍보를 추진했다.
올해에는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확진자 수 폭증이 혈액 수급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힌다. 코로나19에 확진자는 확진 이후 완치될 때까지 1주, 그 이후 4주를 합쳐 최대 5주 동안 헌혈을 할 수 없는 '헌혈 부적격자'로 분류된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500만명을 넘어섰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최근 한달여 동안 감염됐다. 전체 국민 중 약 30%에 달하는 숫자가 헌혈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다 보니 헌혈자 모집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헌혈량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감소해 왔다. 지난해 무소속 전봉민 의원실이 혈액관리본부로부터 제출 받은 헌혈량 실적에 따르면, 국내 헌혈자 수는 지난 2017년 271만명, 2018년 268만명, 2019년 261만명을 기록했으며 2020년에는 243만명으로 지속해서 줄어들었다.
반면 국내 총혈장 사용량은 지난 2015년 기준 67만2574리터(ℓ)에서 2020년 95만914ℓ로 약 41.4%가량 증가했다.
-해외 수입도 힘든 혈액…"헌혈 참여가 유일한 해결책"
국내에서 혈액을 자체적으로 충당하지 못하면, 해외에서 수입을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헌혈량 실적을 보면, 국내에서 소비되는 혈액의 해외 의존도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지난 2015년 당시 수술용 혈장 자급률은 95.4%였으나, 2020년에는 55.1%로 40.3%포인트(p) 하락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해외 혈액에 의존할 수는 없다. 현재 국제 사회는 '혈액 자급자족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1975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적십자연맹(IFRC)은 "자국민에 의한 혈액자급 원칙", "혈액의 상업성 이용배제 원칙"을 만들고 이를 모든 나라에 권고했다.
국가마다 혈액 검사 방법, 사업 기준 등이 다르기 때문에 국내에서 직접 헌혈을 통해 혈액을 수급하고 관리하는 방안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또 남의 혈액을 밀매하는 이른바 '피 암시장'의 형성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 또한 체계적인 혈액 관리법을 도입해 낭비되거나 실수로 폐기되는 피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2018년부터 올해까지 '수혈적정성 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이 지표는 꼭 필요한 환자에게 알맞은 양의 혈액만 수혈할 수 있도록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헌혈 기관은 현재의 혈액 수급난을 타파하려면 국가와 국민을 포함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혈액관리본부 측은 "정부, 공공기관, 군부대 등의 적극적인 단체 헌혈 참여를 요청하고 헌혈 참여 이벤트나 홍보활동을 하는 등, 혈액보유량을 원상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지금 상황은 자칫 정상적인 혈액 공급 체계가 마비될 수 있는 혈액 부족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위기를 극복하려면 헌혈자들의 헌혈 참여가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지 않도록 헌혈에 적극 참여해주시기를 간절히 요청 드린다"라고 전했다.
임문선 기자
moonsun9635@naver.com
출처 © 복지뉴스
http://www.bokjinews.com